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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 래

 

 

 

 

 

 떠나는 자

 

슬픔을 손으로 구기고 떠나는 자여

가슴을 얼굴에 달고 쓸개처럼 웃으며

저승처럼 이승을 떠도는 자여

목을 조이는 가난의 밧줄

마저 깎지 못한 머리털인 양

부모를 안고 고독을 목에 걸고

밤마다 밧줄을 당기는 자여

이 지상 바람 불고 갈잎 지는 건

눈 오다 그치듯 사소한 그림자일 뿐

이제 너의 숲으로 가자

그만 자궁처럼 따뜻한 숲으로 가자

 

슬픔도 꼭 짜서 짚세기 삼고

노래 없는 이세상 휘파람 세워

못다 부른 이름일랑 허공에 걸고

허이허이 산판 난 길 따라서 가자

눈 오면 받아 먹고

그래도 눈물 나면 울면서 가자

나보다 더 슬프게 살다 가는 부모

밤보다 더 고독하게 앓다 간 이들

 

생각하면 터지는 그렁그렁한 사랑

닫아야 할 때를 아는 저녁놀 진다

이제 너의 숲으로 가자

허이허이 산판 난 길

눈 맞고 가자

 

 

 

 

 

 

     

 

 아버님을 산에 묻고

 

아버님을 산에 묻고 흩날리는 눈물로

하산 한다

세상은 다시 어둠

산만이 외로이 밝다.

 

꽃 상여 오색만장

빗속에 흩날리며 훠이훠이 휘돌아

산비탈 접어 누우신 석관 속

그 분은 몇 벌 삼베옷 입고

가벼이 하늘을 나신다.

 

오지 못할 하늘 길 가신

고향이시여

궂은 세상 내려놓고

가벼운 하늘가 꽃구름 어우러지는

그 세상에 가소서

새털구름 지으소서

 

아버님을 산에 묻고

그 분의 슬픔을 묻고

기쁨만 들고 내려온다.

 

 

 

 

 

 

 

 

   치매

 

새 이치가 헌 이치를 쫓고

새 버릇이 있던 버릇을 괴롭힌다

오줌 싸 방바닥 닦고 똥 싸 깔고

제사 지낸다

그렇게 노시다 졸고 있는 어머니

 

한가진 아직도 알고 계셔서

기저귀 벗고 방 한 켠에 변 보고

일견 생각에 혼자 치려다

소꿉장난처럼 엉켜버린 분뇨

닦아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냄새 속에

쪼그리고 코 고는 밤

 

미음은 제때 드셨나 물은 드셨나

굳은 떡보시기 빈 물잔 밥상

하루 하루 뇌세포가 죽어가듯

식사도 줄어가고 말수 더 줄고

구천 귀신과 대화하다 혼자 웃는다

죽음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고

내게 눈물만  덜어내시고

덜어내시며----

자꾸 가벼워 가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우시고

 

어마니가 우신다

잣죽사발 헛집는 수저질로

한입 가득 죽 물고 삐질 삐질 우신다

물 한모금 밥 한 술 손대지 않다

밤에 온 아들이 끓여준 잣죽 물고 우신다

소리없는 폭포 안으로 흘리다

넘친 것만 다시 쓸어 담다 비친 것

 

치매 심한 어머닌

굶다 오줌 젖은 이불 안고

꼬꾸라져 조시다니

 

어머니가 우신다

빨리 가야지 용서만 붉다

피륙 앙상한 종아리 새로

말 안 듣는 심줄만을 나무라시며

자꾸 어딘가 가고 싶은 어머니

엄니가 우신다 아들이 운다

피가 운다       

 

 

 

 

 

 

 

 

   빨래

 

어머니의 빨래를 넌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빨랫줄에 널린 어머니의 속옷

팔 들어 허공을 젓는다

늘어질 대로 늘어진 오른팔

빨랫줄에 걸려 소리 없이

16년 마비된 팔이 움직이고 있다

다리가 하늘을 걸어보려한다

 

어머니의 이불이 말려진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용변의 얼룩도 체온도 말려진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나는 눈물이나 슬픔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가벼워지는 어머니의 육신

 

숨가쁘게 이승의 호흡을 몰아 쉬고있는

차마 아쉬운 이승 하늘 뜨겁게 몰아 뿜고있는

정말 한 삶이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시각 시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면서

빨래는 말라간다.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꽃상여 구비구비 상두꾼 호곡 매김

고향들 바람 무니 풀 소린가 구슬프고

산 길 내주는 풀섶 따라

소복무리 한 줄기 연기처럼 오르는데

두 번째 타는 꽃가마

이승의 마감 아쉬운 붉은 만장 흐느낀다

 

어머니를 산에 모신다 아버지 옆에

3년 채 안돼 상봉하신 두 분

마중 나온 성곡사의 만불상 건너

꽃 따고 나물 캐던 무성산의 품에서

탁 트인 앞능선과 저수지 내려보며

지그시 손잡은 쌍봉 묘가 됐다

 

시원한 땅 밑 세상에서

살아 계실 때 잠자리에서 의논하시던

대화 소리가 잔잔히 들리고

기구한 이승 삶 베푼 후덕 복에

고향 친지들 모내다 허리 펴며 한번 보고

밭 매다 들러 잡초 뽑아주는 

명당 중의 명당에 저승터를 잡으셨다

 

고난 많던 이세상 아픔 잊고

투명한 바람 타고

저 하늘로 떠나시는 어머니

팔다리 다 성한 세상에

마음껏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소서

아무 원망 없는 곳에서

아버님과 덕담 나누며 손잡고 사소서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눈물로 무너지는. 내 어머니

 

 

 

 

 

 

 

 

 

   삼우제

 

밤새워 윤오월 비는 통곡한다

한 여인의 기막힌 일생에

자식으론 모자랄 눈물이 앞질러 터져

세상은 이미 슬픔으로 쓸리는 바다

빗속으로 나설 어머니 앞에 향불 올리고

남은 자식들은 무너지는 육신을 세워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에 수저를 잡아 드렸다

 

차령산맥 고향길도 냇길도 산길도

퍼부어져 넘쳐버리는 비에 말없이 젖어

말릴 수 없는 몸부림만 어딘가로 자꾸 흐른다

젯상 위 휘장을 두드리며 통한하는 빗발

 

영정에 뚝뚝 맺혀지는 눈물도

떠남을 아파하는 그렁한 눈매도

향불되어 빗속으로 타들고

빗물 속에 박힌 무릎은 일어설 줄 모른다

 

죽음은 완벽한 헤어짐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확실한 이별과 만나야 한다

단 한번이라도 만져볼 수 있는 ,바라볼 수 있는

어머니는 없다

이 세상에 육신의 고향은 사라졌다

황토와 잔디로 덮인 봉분과

아들 딸 며느리의 소복만

산천처럼 비를 맞고 있을 뿐

 

나는 울어버린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리며

붉은등을 깜빡이며 질주해 가버리는 어머니의 영혼이

빗속에 저렇게 많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돌아 갈 수 없는 그리움이 빗물져가고

헛헛해지는 가슴에 외로움의 뚝이 터진다

홀로 남겨져 입성을 하다니.

별밭 등 켜진 서울에

어머니를 잃고 나만 살아 돌아오다니.

 

 

 

 

 

 

 

 

 

   사망신고

 

종이 한 장 제출하면

지워지는 어머니

이승의 어머니는 그렇게 지워졌다

 

이토록 쉽게 삭제되는 인생인데

그많은 벌레 울고 천둥 번개 치던

칠흑같은 한평생을 질머지고 오셨던가

요걸 살다 가시려고 그 설운 세월

허공에 팔 저으며 넘고 넘어 오셨던가

오늘도 하늘은 슬프게 푸른데

어딘가로 지워지는 한 인생

 

그렇게 보내고

다시 만날 길 없는 평생을

내가 이어가는 이승의 삶

서류로 결딴나버리는 목숨의 길에

초라하게 서서

하늘을 허 - 바라본다

 

 

 

 

 

 

 

 

   친척

                                                     

평소엔 몰랐어도 궂은 일 당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어딘가 닮은 얼굴들

이름표처럼 한조각 정을 달고

과거의 한토막을 나눠 씹으며

밤 새도록 술잔을 들이키는

따지면 무엇이 되는 사람들

 

어디서 어떻게 사냐고

찾아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손 놓을 줄 모르는 사람들

꼬깃꼬깃 간직한 얘기 가슴에서 꺼내

돌려가며 웃고 우는 아쉬운 만남

누구는 어떠냐고  많이 늙었지 않냐고

그러다 몇 년 전 이승 떴다는 얘기에

준비도 없이 눈물지으며

한두 마디에도

그 사정 다 알아버리는 사람들

총각적 아버지  꽃같던 어머니 거기 살아 계시고

아는 기억 화투패처럼 짝 맞추며

저마다의 한 줄기 인생을 엮어주는 사람들

 

그분들 한분 한분 세상 뜨시며

수많은 사람들 인생도 사라지고

돌아앉아 피우는 담배연기처럼

아쉽게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내 핏 속 내 살 속에

붙잡으면 하냥 울고 싶은 사람들

 

 

 

 

 

 

 

 

 

   제기(祭器)

 

제기를 닦으며

그분의 생존 삶을 문지른다

구석 구석의 물기를 닦으며

사후 삶을 광내본다.

 

맑게 옻칠 된 내면에

결로 배어있는 주름

오동나무 땀구멍마다

한숨 지며 넘어가던 어머니의 어둠

점점이

물로 피로 다 말리어

이렇게 가벼워진 몸으로

길 뜨셨지

 

그곳은 꽃잎처럼 기쁨이 터지고

행복이 민들레 씨처럼 날리는

고통도 절름발이도 없는 세상일까

불효자식 없는

그곳은 당신이 바라던

슬픔없는 세상이겠지

 

제기를 닦으며

그분의 슬픔을 닦으며

투명하게 빛나는 웃음을

만난다

 

 

 

 

 

 

 

 

   마을

 

마을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깜빡이며 수없이 돌아오려는

창문들을 본다.

텃밭은 고옵게 서리가 돋고

달빛에 반짝인다.

몰래 돋는 것은 이리도 제 스스로 얼다

모르게 스러져 가나보다.

 

산과 밭에도 눈이 돌아오면

풀 위에 눕고

푸르던 나무에 걸터앉아

초가지붕에 서린 달빛이나

한줌씩 세이리라

 

마을 어딘가 이엉매듭의 꼬임이

잿빛으로 땅에 내릴 때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옛 기억들이 묻힌 마을의

수 없는 깜빡임을 보리니

 

회귀의 길목엔 언제나

서성이다 가는

밤 서리 같은 이들이 산다.

 

 

 

 

 

 

 

 

   고향 집

 

흙 돌담 무너지고 문짝은 젖혀졌다

누더기 창호지 찢긴 살결 흔들려

세월도 허물어진 예 살던 시골집

 

뒷곁 대나무숲 장독대는 그대론데  

바람구멍 벋은 흙벽 거친 결 대청 기둥

소 울던 쟁기쇠는 검버섯을 피워낸다

 

누군가 건 농약병 목 매달린 추녓가

기다림도 지친 듯  적막한 제비집

울고 웃던 가족들 혹은 죽고 혹은 떠나

벌레조차 발길 끊긴 체온 잃은 폐가 뜨락

자연은 제 빛인데 생활은 삭아갔다

 

염통감 같이 따서 씻어 먹던 우물가

순님이 을림이 곱디곱던 누나까지

별처럼 흩어가곤 아득히 저미는데

아무도 못 만나도 못 떠나는 고향집

 

낙조 길 퍼진 금빛 무덤마다 금잔디

우선 혼만 묻고 뼈 심을 날 기약하니

한 베개 촉촉한 잠 시방 들자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