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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봉도
밤 비
봄밤에 낙수소리
밤을 타 벌던 벚꽃잎을 적셔
외등 빛에 청초롬이
살빛 섞어 피워낸 뒤
가평역 철로 멀리
어딘가로 떠나는 이
편지처럼 이야기가 있는
흰 손이 흔들리고
밤 기적 소리는
눈물이 차창에 맺혀
자꾸 이 세상을 눈감게 한다
그렇게 보내고, 나도
쇠잔한 몸으로 사십을 넘겨
시골역에서 예매표를 사놓고
밤을 맞는 비
촉촉한 슬픔이 허공을 디뎌와
어둠 문 빈 철로에
눈물로 맺혀간다
승봉도 1
그 섬에 가보셨나요
돌 갯벌 게걸음 노을 속으로 달려들고
섬 아이들 돌 뒤치며 꿈을 줍는 바닷가
조가비의 숨은 호흡 뽀글뽀글 영글고
새벽을 타 바다를 향하는 게들의 이동이
뻘밭에 길을 내는 바닷게의 섬
하루 한번 들르는 인천배 도착하면
잠시 설레다 잠잠해지는 정오 한때
아련히 흔들리던 이별의 손짓 싣고
그 배는 떠나고
바닷가 돌길 멀리
붉은 놀 서녘에 켜질 때
초등학교 분교의
여덟 아이 합창 실은 풍금소리 따라
출렁이는 파도가
길 잃은 소라 고동을 부르는
그리움의 섬
그곳에 가고 싶다
바다가 밤낮으로 육지를 깎아
갈매기 맴돌며 울고
아침 저녁으로 어망에 올라오는
고기를 먹고 한없이 착해져
갯바위처럼 사는 털보네 집이 있는 곳
날마다 바다를 살아 섬이 그립고
편지처럼 조각구름 들르면
자꾸 하늘로 띄워보내던
서해 바다 초록 섬
승봉도 2
평생을 살아도 사람이 그립고
날마다 추억만 살다 죽어가
바다 가득 쓸리는 소라껍질같은 얘기를
물결이 다가와 만져주는 섬마을
바다가 무심히 뒤척이며
바위마다 깊게 파는 사연을
무시로 쪼아 보고 가는
섬 갈매기
파도는 말이 없는데
바다는 부르지 않는데
소리 없이 들러가는 사람
그 사람
한없이 서성이는 물결가에서
종일토록 아무것도 기다리잖고
마음만 펴접다 돌아오는 길
낙조 베어 물고 켜지는 추억 한 등
승봉도 3
마음 뿌리 없는 섬 돼
파도 안고 서해에 나가면
외로움 먼저 자리해
바다로 떠가고
섬인가 등대인가 목 긴 봉우리
눈 시리게 먼 곳 향해
그렇게 떠있던
승봉도
평생 바다 사는 섬 마음
모래로 부서져 백사장을 지키고
해풍 휘감고 살을 깎는 벼랑가
모진 그리움인가
씻긴 옥돌무늬에 선혈로 남은 추억
그날이 어젠 듯한데
세월은 흔적조차 아련하고
모두는 과거에만 살거늘
결국 또 섬인가
바다를 보면 깨닫는 길
섬마저 잃어버리고
하산하는 서녘 등에 불타는 파도가
꽃상여 되어 오늘을 떠메간다
경포대 1
말이 아니면서 말이 되고
생각이 아니면서 생각인
겨울 파도
뒤틀리는 몸체 뚝뚝
살집 깊이 섞어온 푸른 멍울은
어느 과거에 대한 시린 번뇌일까
어디든 여기 아닌 데로 부서져
무엇이 해결될 수 있다면
파도는 경포대로 쓰러지잖고
그리움도 저리 높이 구르지 않았으리
이승에서 수평선까지
갈 곳 없이 뒤척이는 단어들
부서지고 엎어져 모래에 스민,
이 세상 다 살도록 전해지지 못할 생각 밟으며
종일토록 파도밭을 서성이는 겨울
경포대 2
그리움도 울고 간다
경포대에서는 파도도 멍울이 푸르고
술도 취하지 않고 술잔 가득 파도만 괴롭다
누군들 바다로 부서지는 겨울
그대는 그립다 하여 술병을 연신 들이키고
백사장은 끊어질 듯 노래만 부른다
경포대에서는 파도도 밀려오는 과거를 물고 뜯고
우리는 헝클어진 삶 땜에 글썽이는 그리움 땜에
침묵을 깔고 앉아 묶어지지 않는 생각을 밤새 묶는다
저 떠밀려야만 하는 생떼 같은 사랑
그대는 추스르지 못한 이별을 또 털어 넣고
밤 수평선은 야광의 은비늘 계속 술렁여
이 세상을 자꾸 눈물지게 한다
그대 눈물 채울 거나한 바다 있나
나도 따라 출렁이는 설움 펴놓고 죽을
이 그리움덩이 몸 둘 바다 하나 있나
만나고 싶구나. 기다림은 술병처럼 쌓이고
방풍림 취하도록 송진향 뿜는 밤
그대 내 아니듯 나 그대 될 수 없는
한 점 섬으로 돌아가는 숱한 내일
눈처럼 별빛 쏟아지는 파도가에서
내일은 내일의 파도를 만나며 살고
이 밤엔 견딜 수없이
40℃의 작별을 들이킨다
경포대 3
돌아올 수 없어 하 망설이다
파도 되어 가는군요
머리 풀고 몸 부수며 포말 되어 가는군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곳에 살던
그대와 나의 과거는
이렇게 이별합니다
그대 떠나는 바다와 하늘 사이 수평선에는
결코 아무 이름도 쓰지 않겠습니다
백사장을 밟고 서있는 겨울과
같이 온 바람과
비켜가는 울음소리 울음소리
종이 컵에 모락이는 커피를 감싸며
나는 일어날 수 없어 보내기만 하고
그대는 떠나기만 합니다
한때도 절절하지 않은 사랑이 없고
한 떨기 몸살이던 계절도 집니다
그렇게 다 보내며 허물 벗는 백사장
아픔만 남겨져 경포대를 쌓습니다.
입춘 눈발
- 홍천에서
이 날의 눈발은
청정한 산하 엄동을 버텨온 나목들에게
소리없는 편지를 흩뿌려
그 무슨 소식인 양
차갑게 깨우더니
일어서는 풀포기마다
하얀 목도리, 흰 소매 걷고
어딘가로 나서라는 춤사위
골짜기마다 걸려 있던
그리운 얼굴
냇가마다 감췄던
잃어버린 시간
이 땅 틈서리 서리
밤 뒤척이게 하는 사람들 깨워
살아보라고 살아보라고
팔 끌며 엉켜 추는 씻김굿.
간월도
달빛 교교히 바다에 떨어지고
물결 비늘져 가슴을 흐른다
종소리 머금고
시름은 산란한 눈발인데
나가 앉은 암자 섬
촛불 하나 숨 고르는 간월사
흐느껴 부비는 달빛에
백연꽃 눈감고 만개한 물낯
바다는 담 넘어 튓마루에 오르는데
달 누운 수평선 건너
구도(求道)는 안개 감는 미몽길인가
깨어라
깨어라 철썩 철썩
파도는 등을 치고
태워지잖는 정 한 점
비린내다 연기여라
박수머리 파르란 번뇌에
촛불 이미 잠이 들고
달빛만 홀로 세상에 남는다
보문사 가는 길
배는 갈매기떼 몰고 섬 건너 오고
바다는 날 휘감고 산으로 가네
억새 억억 우는 산정 너머는 또 바다
보문사 눈썹바위 부처님
입가에 노을만 한가득 물고 있네
저 바다에 해 지는 일 어언 천년
이마엔 중생의 길이 켜질 듯도 한데
미소인 듯 비소인 듯 빙긋이
지는 해만 눈 시리게 바라보라 하네
온 바다를 가득 틀어쥐고
큰 소리로 벌컥
붉은 울음 토해내는 서해는 낙조
어느 천년이 가도 산은 움직이지 않으며
바다는 해를 낳고 거두고
인간은 석벽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안타까운 인연만 깜빡이다 꺼지는 하루일 뿐
지는 자의 몸부림과 순응이
붉은 비늘로 일렁이는 바다에
하늘 고운 울음이
범종소리 따라 은은히 멈추네
부처님도 눈을 감네
가평역
낮부터 떠있던 얼룩배기 상현달
임시 역사(驛舍) 지붕 위에 목을 걸고
철길 멀리 신호등 붉게 해걸음칠 때
그리움처럼 다섯 냥 짜리 열차는 돌아왔다.
몇 개의 근심어린 주름 보따리를 얹고
턱 괸 창가 졸지 못하는 이들
번호표가 사람을 앉고 서게 한 뒤
창 밖 멀리 인간의 별빛을 바라보며
기차는 온몸이 저린 듯 떨며 떠났다.
앉건 서건 지긋이 눈 내려 있는 모두는
떠나는 자
차창에 비치는 창 안의 우리는
이 시간 벗어날 수 없는 각자의 외로움을 앓으며
맞닥뜨려야 할 미지의 상념에
눈매 아스라이 어둔 바다만 긷는다.
가평역
다섯 냥짜리 밤기차로
떠나는 자는
바다보다 더 깊이
침묵하는 버릇이 있다.
. 송탄의 겨울
막힘 없는 평야 질러 서해 바람 차고
못다 진 갈대 고갤 돌려 추윌 견디는
허허벌판 시골 읍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바다가
바람을 보내 매일 겨울을 사는
손 곱은 아낙과 아제들이
더욱 추워져가는 12월이 오면
열차도 더러는 들르지 않고
쓸쓸히 철로만 얼어가는 간이역
침묵어린 눈발의 손짓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의 군불을 지피고
먼 벌판에 쌓이는 자식같은 함박눈
하얗기만한 기다림을 지키는 눈가에
사랑이나 행복이란 사치도 더러는
두덕 두덕 캐내
담뱃불 지피는 1번 국도 옆 마을
뽀득이는 눈길 밟고
달빛 흰 철길 건너 과거를 마시고 오는 길
취기로 훈훈해진 넉넉한 시조 한 수
솔가지 얹힌 눈 별 불러 함께
반짝이는 겨울 밤
마을마다 창문마다
포장마차처럼 그리움의 불빛이 모여 사는
은사시나무 별 떠는 마을
산타모니카
20년 만에 만난 친구와
태평양 너머 고국을 바라보며 듣는
기막힌 사랑 이야기
모래에 꽂아지는 숱한 담배꽁초
대신 태운 가슴인 양 묻고
태평양을 건너온 바다 안개
아득한 눈매의 친구 옆얼굴에
맺혀지는 파돗빛 향수
바다가재 굵은 허리를 분질러
캐찹처럼 선명한 그리움을 찍어
태평양 멀리 울컥 삼키는
하얀 살집의 담백한 우정.
망망대해처럼 살아온 세월 속에
파도처럼 씻겨간 조가비같은 사람들
어쩌다 이렇게 살았는지 정말 몰라
구멍으로 뚫리는 가슴이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