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하나의행복
구준회
하늘이 닫혀지는 날내내 /늘 호주
머니 속에 조몰락이는 /네 그리움
으로/ 손을 뺄 수 없었다. -낙일.
도서출판영하
自序
한 뼘 목숨 밑에 달랑이는 기십킬로 이 몸뚱이 하나 부지하기 위하여
입때까지 허둥지둥 달려 왔습니까. 거울에 비쳐지는 상가 같은 저 얼굴
모양 지으려구 그 세월 부질 없이 주저리며 왔더랬습니까
가진 게 변변찮으니 남길 것 없어 서운함은 없습니다. 그래도 떠오르는
나 하나 남긴 부모 내가 남긴 자식, 그 아픈 인연 하나 짓자고 그만큼
아팠더랬습니까.
수도승처럼 촛불이 늘 켜져 있고 이제 다 타 꺼져가는 밤 입니다.
몇 개 인연 칭칭 동인 내 하나의 기억 세포가 자꾸 저리게 하던 세월.
그것은 저승에 가서도 못내 그리울 것 입니다 이 지상처럼
그 살아보는 편린을 그냥 잊기 그리워 몇 자 적어봤습니다. 앞으로도
그리움이 살아 있는 한 그럴 겁니다.
요즈음은 왜 이렇게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만나는, 모든 이와
대상들이 .
이 길을 잊지 않도록 채찍질해준 친구, 문우제위, 스승님 고맙습니다
모아 세상에 빛 뵈어주신 님들 고맙습니다.
이십 세기 마지막 해
구 준회
1
사랑은 어디를 가나
낙일(落日)
하늘이 닫혀지는 날 내내
늘 호주머니 속에 조몰락이는
네 그리움으로
손을 뺄 수 없었다.
저녁상처럼 마련된 슬픔이
퍼진 하늘가에
한없이 흔들리는 가슴 한 자락
바람의 길목에서 세차게 흩날렸을 뿐
너를 잃고도 내가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달
물 위에
달이 있습니다.
누군가
알듯 알듯한
그러나 잘은 모르겠는
누군가
돌을 던집니다.
달은 찢어지고
사랑도 그리 됐습니다.
달을 찢어 사랑을 데려가는
그는
누구 입니까 .
너 떠난 후
오늘은 피곤하여
너를 조금밖에 생각 못하고 잔다
어느 미안함이 이보다 클까
늘 저려왔다
사랑에 쉬는 시간이 없었듯
아픔도 쉬는 시간은 없었다
연체동물처럼 사는 세월
내 온 촉수가 슬픔의 바람에 깎여가는
고통이 수반하더라도
정녕 사랑하는 너라면
보듬고 있으리라
지금도 네가
내 쇠락하는 몸 가득
더 깊이 자람은
너 떠난 후
상복을 입지 않았을 뿐
상제의 슬픔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밤바다 1
세상의 그리움을 모두 거두어
꼬옥 짜면 몇 방울이나 진한
눈물이 되나
따로 두고 고개 숙인
나날쯤이야
견디다 지치면
물로 흘리지.
바닷가에 앉으면
꼭 울고 싶은 맘
그리움은 별이 되어
밤바다에 산다.
밤바다 2
누구의 그리움이 바다가 되나
초생달이 퍼 올리는 바닷물 가득
반짝이는 눈물에 별들이 진다
소리 없는 파도 가고
세월 흘러서
무척이나 지쳐서
물이 된 별들
밤으로 깨어나는
새벽 별 몇 개
바다로 다가가 또 물이 되고
그리움만 혼자 남아
백사장을 들러 간다
혼자 반짝이다 지는 것이 별뿐이랴
혼자 반짝이다 지는 것이 별뿐이랴
인간의 마을에 이 밤도 지는
꽃잎들,
이슬 하나씩 토하고
쓰린 추억을 만지는
이름 없는 반딧불들
밤하늘 어디서
떠돌다 잠들지 못하는
혼불들
그리움은
잊어가는 일의 영구진행형
이 흔적과 파편이
하늘 조차 기록되지 못하고
모닥불가 네 생각만 탄다
오늘 밤도 하늘 가득
소각되지 않는 그 이름으로
떠도는 그리움들
혼자 반짝이다 질 저 혼불들
사랑은 어디를 가나
사랑은 죽어서 어디를 가나
사랑하던 것들은 떠나서 무엇이 되나
늘 부끄러운 사랑의 뒤안길에서
도로가 내다뵈는 빌딩의 창가에서
슬픔 이쪽에 서있는 날들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새살만 돋는 그리움
사랑을 헐어내는 일로 나날을 보내고
그리움을 박제시키는 일로 나날을 보내고
이제 온 천하의 슬픔을 다 알 것만 같은데
너는 그런 곳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우리 어느 별에서
따로 깜빡일지라도
사랑했기에 아름답던 날들은
결코 지울 수 없기로
따스한 눈물 한 조각 품고
이 지상의 밤들을 목숨 밖까지
살고 있지 않더냐
새벽 강
가을 강뚝을 서성이다
들꽃을 보면
사랑이란
스스로 피는 것만 같았다.
머리칼을 흔드는 이 있어
돌아보면
씁쓸하게 손젓는 바람
이 계절보다 독한
인연의 어지럼증 때문에
난간에 기대
강물을 보는 일
물같이 사소한 헤어짐이
발아래 하늘에도
구름 지다 떠나서
강물의 살갗을 들추면
밤길을 디뎌 온 눈물들이
그렁그렁 걸려
쉽게 웃으며 살 수 없는 이승
소리없이 뒤집히는 물낯 위로
낙엽은 일년 분의 고독을 띄우고 있다.
해빙
누군가 사랑을 말하라면
쾅쾅한 얼음을 보이리라
오래 전 묻은 그리움은
잔설 남은 거리에서
섬짓, 기억으로 빛나고
하얀 잔상 너머
어렴풋한 그 사람으로
시려지는 가슴
긴 세월 젊음의 피톨을 태우고
숯처럼 걸어다닌 거리의 방황과
눈물로 흩어간 그날의 기록들을
너의 밤 창가에서
늦도록 읽어 주고픈 맘
저 파란 지구 하나
슬픔 아닌 길이 없고
시리지 않은 가슴 한 점 없는데
누군가 사랑을 물으면
눈물로만 난 길로 데려가
꽝꽝 언 가슴을 보이리라
아무리 껴안아도 차가운
또 하나의 세상을 보이리라.
슬픈 꿈
이날의 새벽은
옛길을 허허로이 거닐다
장지문 너머 옛 여인의
사연 모를 흐느낌에서 막차처럼 돌아온다
아프게 흔들리다 홀로 깬 창가에서
눈 시리게 멀어 간 여인의 잔영이 잡혀
한 모금 슬픔 팍팍한 목젖에 걸린다
꽃잎 같던 내 처음 사람
확실한 아픔의 깃폭을 세워 둔 그 사람으로
아직도 이 지상은 재울 길 없기로
어떤 아픔은 알려지지 않고
꿈길 밖에 길 모르는 이 세상
부질없이 살다 가나니
내 아직 이 지상 남아
죄 되어 꺼져 가야만 하는 끝없는 정의 복사
어둠 덜 갠 여명의 깊이로
억만 톤의 먹지가 새벽 강가에 풀린다.
한강
강물의 어디쯤 나도
강물이 되어 섰다.
강 위로 가끔
아이들의 돌팔매가 꽂힌다
과녁의 중앙에 비수 문 흰 거품이 번뜩
기슭으로 달려 가
바위를 친다.
한 마리밖에 없던
백로가 손짓처럼 날아 간
그 뜻은
무엇일까,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의 어디쯤
나도 강물이 되어 산다 한다.
산길
그대 누운 산길 낙엽 지기로
산은 길을 모르고 길도 산을 잃고
생명이 있던 것은 가림 없이
몸 누이는 계절
어제 배달된 가을비에
떨어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라
그만큼의 바람도 누워
또 하나의 계절을 닫으려 한다.
내 이제까지 혼자 걸어온 숲은
빈 가지마다
이야기가 있는 작별의 손 흔들림
밟히는 잎새의 실핏줄 따라 전해오는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고통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픔
어딘가, 여기 아닌 곳으로 보내진 그대
그대를 보냄으로 세상은
무엇이 해결되었는지
여기로 남은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그대 눈 감고 밟고 갔을
살아서 몰랐던 길
산등성이 가득 머리 풀고 선 나목들
어떤 발길을 위해
한 잎 두 잎 낙엽을 떨궈
손짓처럼 내 그대에게로 닿는
산길을 내놓는다.
목련화
목련화 피듯 내 오고
목련화 지듯 내 간다
담장 너먼
남의 집
잎도 없이 꽃질러 틔우고
아침 햇살 속 이슬로 씻으며
포갠 손 한 떨기
때때로 골목길 돌 때
상장(喪章) 같은 흰 얼굴로
뉘도 모를 끝을 비치더니
상심도 모르는 화사론 봄날에
아니 온 듯 지는구나
나 어찌
목련화 피듯 문득 왔던가
목련화 지는 꽃잎에
사월만 지천으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