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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날 밤

먹고픈 것 많은 나이

음식을 싸고 풀어놓고

정리하고 들여보내는 시간엔

철망 문 안과 밖의 거리가

얼만지 모르겠어라 이미 몇 번째

단련이 됐을 만도 한데

이별은 늘상 첫 경험

아리다니

통증이 집까지 찾아드니

자주 할 일은 아닌데

앞으로도 일 년 눈물이다

이런 눈물을 먹고

너는 산 아래 병영에서 커가고

나는 길 위에서 늙어 간다

파아랗거나 흐리거나 한 하늘인 걸

소나기거나 폭설이나 같이 맞는 걸

생활한다고 한다면

잘 살아가는 게 좋겠다

희망 땜에 산다고 한다

너를 만나고 희망 다발을 안고 돌아와

소처럼 되새김하는 밤을 보내며

그 사이 몇 알갱이 고민은

네 안의 시간과 세월이 답해줄 것을 믿기에

친하게 같이 살기다

그래서 인생이란다

못 보면 멀어짐이 인지상정이라지만

봐도 보�載�

못 봐도 보이는 게 아들이구나

이 밤도 너와 함께 잔다

일어나렴

태봉리에서 슬픈 소식이 파고든다

훈련 장갑차 복귀 중 하사 사망

아들부대 동갑네기 군인

죽음이 이토록 어깨 옆에 있는 줄 몰랐을 충격이

장례를 치르고 이별을 치루고

지금 마음은 무엇을 치루고 있을까

한 아이가 자라고 군인이 되고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일을 보며

존재의 무효화를 당하며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산천은 고요함을 보며

무엇도 울고 있지 않음을 보며

지금도 아이는 태어나고

이승엔 하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산천도 아는 척 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인간으로 외롭고

그 몫까지 살아줘야 하는 일도 있구나

울만큼 운 뒤에 네 몫으로 일어나렴

생존 하나도 이렇듯 어렵다

산다는 건 차마 위대한 일이다

우체국 가는 날

국도변 시골 우체국에 가면

아들이 있을 것 같아

또박또박 주소를 쓰고

건네는 군사우편을

인상 후한 아저씨가 받아

씨익 봉투처럼 나를 한번 보고

등기 딱지를 붙이고

여러 편지 사이에 줄 세운다

편지는 발을 달고 마음을 달고

아들을 향해 떠날 것이다

보내는 설렘을 잠시 누리고

돌아서 나오는 빨간 우체국 화단에

찰랑이는 빨간 글라디올러스 향이

그리움 뭍은 바람이

춤추며 함께 갈 것이다

아들  짐

이사 전

군대 간 아들 짐을 싸며

아들도 품에 싼다

한살한살 자라며 뛰놀 때 꽃이던

한컷한컷 어린 감성이 밟히는

흑백사진이 밤새 홀로 돌다

노력과 성취로 남은 증서들

하늘과 닿은 웃음

밝지 않은 낡은 낙서들

커간다는 것을 피하지 않았기에

삼켰던 말들이 건네는 단어들

아비로 부족하여 아들로 아프진

않았으랴 묻는 밤

주인 떠난 방에서

수많은 키의 아들이

수많은 표정의 얼굴이

아비라 바라본다

남기고  떠남

산 밑 어둠 속에

무언갈 남기고 떠나온다는 것은

어둠의 아스팔트를 달려온다는 것은

누군가의 가슴을 달리는 일이라서

아플까봐 아플까봐

엑셀이 눌러지지가 않는다

닫힌 눈물의 뚜껑을 누르고

솟는 아픔 퍼지는 그리움을

참아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 다독이며

현리를 떠나지만

아비이기에 어미이기에

기다려야 할 세월 문 자리가 아픈데

떠나고 떠나며

네가 나의 눈물이었고

네가 나의 아픔이었고

네가 나의 온 삶이었던 걸

짙게 깨워주는 어둠이 고마워야 했다

주문진의 밤

주문진에 와 밤을 만나다

돌아갈 집은 오백 리 밖

너 있는 옆을 지날 때

눈이 가는 곳은 산길

북한강을 따라 들다

물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던 곳

구비구비 한계령을 넘으면

땅이 끝나던 바닷가인걸

북한의 포성이 전군 비상령을 내렸다는데

전쟁이 난다고 귀가 아픈데

너는 현역군인

나는 현역 아버지

가슴은 천만 갈래

눈물은 두 줄기 뿐

병정 간 부모들 눈물이 누천년 모여

동해 바닷가에 철렁이는 여름날 밤

내 아비도 이러했을 텐데

밤만큼 빈 곳 없는

이 나이에 이 걱정

괜찮을 거라고

먼 곳 주문진의 개들이

밤새 파도소리를 �i아내고 있다

20150821금

자식 목소리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생존을 듣는 거다

건강을 듣는 거다

전쟁 들이대기가

벼랑 끝 협상으로 묻혀진 날

자식이 걸어온 부대 전화는

높은 곳에 떠 울던 단비였다

목소리를 듣고파

안부 전화를 누르고

목소리가 귀한 만큼

사람 하나하나 가슴에 찍어두던 며칠

목소리가 그리움이란 걸

그래서 사랑했었다는 걸 깨닫던

또 구도의 날들이었다

고래 고기

고래가 춤추는 국토의 꼬리 포항

죽도시장 초입 아줌마가

권하는 고기 한 사라

이틀 후 휴가 온다는 자식 놈

포항 들렀다 비싸 못 먹었다던 고래 고기

품에 안고 종일을 달려

집 냉장고에 넣고 기다렸더니

그새 이번 휴가는 못 나온다나

뒤�뺙� 듣고

혼자 먹는 고래 고기

춤추지 않아도 자식이라서

고래가 아니라도 자식이어서

독주에 씹어보는 어긋난 만남

세상에 고래가 되어라며 한 잔

고래 돼 뭐할래 한 잔

이래저래 취해버린

고래 고기 만난 날

아니 그놈 만난 시간

거 고기 맛 열 두 가지네 인생이네

편지 보낸 날

너에게 편지를 보냈다

번호표를 뽑고

다른 이의 기다림 속에 섞였다

내미는 병영 편지봉투

등기로 빠르게 오늘도 예전처럼 당당해봤다

성공한 한 남자의 일상처럼

너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왕이다

그러나 돌아 나오며 수녀가 되고

조금 후 목회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하루는 복권 당첨처럼 행복하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이 봐진다

쨍한 빛 희디 흰 구름밭을 봤다 언제나

너에게 편지 보낸 날은

늘 맑었다

슈퍼문

추석은 집에 있다고

돌아오곤 했는데

이태 째 집에 오지 못하는

너는 나라의 베레모 병정

천삼백 킬로나 지구에 가까워져

올해는 슈퍼문의 추석달이라는데

우주의 달은 보이건만

저 저 산 너머 그쯤의 너는

종교적 거리

기도로나 만날 얼굴

달빛 따라 왔을까

네 자취 찾아보지만

옥토끼가 먼저

도리도리

고개 젓고 있다

군번줄

오랜만에 외출 후 귀대한 아들이

군번줄로 남아 있다

봉투에 싼 아들을

배달하러 떠났다

조국의 번호화된 아들이

짤랑이는 머언 귀대 길은

그리움을 잠시 닫는 꿈결 길

고갯길 덜컹대도 꽃길

아들이 있으니까

아들로 기다리니까

쉼 없이 달려갈 수 있는 길

이 번호 하나의 완성을 위해

몸 바치는 젊음의 길에

망설임은 없다 후회는 없다

눈 맑아질 때까지 보고 또 본 후

아들을 내려놓고

밤 철조망 너머 출렁출렁 사라지는

아들을 놓아두고

다시 그리움을 시작하며

까만 길을 돌아온다

면회실에서 기다린다

풍경소리 없는 산사나

유리벽 없는 감방이나

회칠한 시골 공회당 닮은

누군가 이걸 합쳐놓다 급히 떠난 듯한

군 면회실

정자는 홀로 말라가고

드문드문 손대지 않은 잔디가

나무 평상 밑으로

숨어든 연병장 가

그곳에서 기다리노라면 너는

눈 시리게 먼 점으로 나타나

점점 커져 아들이 돼 온다

너는 나의 파도여서

평생을 출렁거리고 있기에

우리 기다림은 늘 백사장 자락인데

아비도 어느 순간 너의 파도인 적이 있었는지

보면 마주치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