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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박 귀대 후

아직도 어린 애를

밤중 산 중에 두고

먼 길을 달려와 돌아보니

곧 눈만 쌓일 그곳에

자식을 떨궈 놓고

어미 아비만 돌아와 누워보니

이 밤이 기가 막히다

부대 밖 하루 잠

부모로 품고 자 본 밤

밤새 밤물소리 끊이지 않고

바람 떠나는 기별만

안개져 짙어 가더니

남겨두고 돌아와 보니

지도에 한 아이가

눈물자욱처럼 남았네

얼룩

얼룩 점 하나

한 해 끝 대화

네 말 중 눈물 묻은 단어가 많아

웃고 있는 모습 밑에 강물이 흐르네

어느새 커 별을 읽는 병사가 되어

스쳐간 얼굴들 하나하나 별에 새기며

어둠 멀리 지켜보는 초병이라니

별에게 배운 단어는

우주의 습기를 품은 이별의 부호이기에

들을수록 젖어질 거야

집에선 몰랐던 깨달음이

몇 알갱이 박혀있기 때문일 거야

별을 자식과 함께 보고 싶은 아비가 돼

네 외로움 한 바가지는

나눠 마시고 싶은데

끝내 겨울은 오고

너는 하얘지겠지

그렇게 눈이 내리는 한 하늘 아래 따로

함박눈을 맞는 아빠와 아들이 되어

한 해를 지우겠구나

박수를 치며

잘 살았다고

웃어볼 수 있도록

남은 모든 걸 안아주자

자, 악수

오빠 면회

너무 젊어서 깨기조차 부끄러워하는 네 여동생이

용돈을 자비량해 바나나 두 송이를 사 엄마 따라

오빠 면회를 갔드랜다 따라 나온 전우들이 상 위

음식을 초토화 시킬 때 한 군인이 찬밥 솥단지

쓸어안듯 낚아채 바나나만 까재끼는데 두 송이째

원숭이더랜다 유독 바나나를 좋아하는 오빠 생각을

담은 바나나를 오빠는 맛보지도 못 했더랜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종일 떠오르는데 꼭 갖나온

애기 같아 왈칵 이뻐 버렸다

크리스마스의 추억

아들

산타할아버지의 반은 엄마

반은 아빠였다는 걸

언제 알았을까

모르고 산타 선물을 받는

즐거운 믿음은 몇 살까지였을까

개인을 벗고

공인으로 만인의 크리스마스를 지킨 오늘

어느덧 국토방위 민족수호라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성탄절의 별자리가

어찌나 빛나 보일까

꿈을 꾸는 한

믿음을 믿는 한

산타도 루돌프도

성탄별도

정녕 존재한다는 걸 알면

늙었다고 할까

그렇지 새로 젊어지는 거란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일제말 할아버지

아빠에게 단 한번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본 추억이

없는 아빠의 추억

크리스마스가 올 때면

왠지 더 할아버지가

복잡하게 다녀가시곤 했지

올해는 왠지

네가 더 복잡하게 다녀가는구나

귀대시키고

집 먼 불 없는 추운 곳에

애를 내려주고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그림자를 보며 담뱃불을 흔든다

끝없는 담 안 철조망 너머

불 밝힌 창문을 향해

내 아이가 걸어가는데

어쩜 끝처럼 가느냐

멀리 암구호 소리가 들리고

가로등 밑을 파고드는 아이

어둠 속에 사람이 있었구나

사람 사는 곳이구나

안심이 켜지는 순간

깜빡 사라지는 아이

건물 모퉁이만 차갑게 한 직선 서있는데

아이는 없고

불그레한 보름달만

부대 밖에서 서성인다

새벽점호

새벽을 깨우는 군화소리

겨울 산을 흔들고

날선 군가 함성에

잔설이 흩어진다

초목이 숨죽인 산하에

젊은 고함 가득하니

나라는 시퍼렇게 지켜지고

국토는 안전하다

맹호 새벽의 아들들아

환인 환웅 단군의 천손들아

원통하다 드넓은 시베리아

중원 만주를 잃고

반도에 갇힌 호랑이

답답구나 마고성의 평안을 잊고

좁은 땅 좁은 맘에

이전투구 하는 조선의 후예들

찾아야 한다 국토도 마음도

가슴마다 들어 있는 신인의 씨앗

캐 길러 수복해야 한다

천산의 그리움이 있다면

파밀 고원 바이칼과 홍산의 추억이 있다면

눈물로 찾아갈 옛토 기다리나니

새벽 함성 하늘에 들려

마고어머니 흐뭇이 보고 계시나니

이제 달리자

만주 중원 시베리아

천산산맥 넘어 히말라야

북극성까지

스키장의 추억

반평생처럼 지났을

반년만의 첫 휴가는 3박4일

하루를 꺼내 눈 세상을 찾았다

검은 점 하나 할강을 하며

점점 아들로 변신해오는

백설 길의 달려옴은

간난 어렸을 적부터

품으로 뛰어들던 너의 속성

곤돌라를 타고 자꾸 산을 오르는

스물 하나의 젊음이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것은

중력처럼 잡아당기는

인간이란 낙하의 피조물

놀이도 어차피 한 슬로프만 선택해야 한다는

갈림길이 있기에 인생스럽겠지만

오늘만은 무거운 군인을

설원 눈바람에 날리며

하강의 속도에 몸을 던졌기를

언제나 뛰어들 품이 돼주고

돌아올 품이 돼 줄 수 있는

아직은 살아 있는 아비로

널 바라 본

스키장의 추억

군용트럭

군용트럭이 간다

아들이 어딘가 간다

얼룩트럭

긴 연통을 빼물고

얼룩얼룩

작아져 간다

어디서나 얼룩트럭은 지나가고

너는 지나가고

가슴 한 조각씩 낙엽지고

눈발로 날리고

바퀴로 엉켜드는

그 많던 세월 싣고

집 떠나듯 떠나가면

적막도 흙먼지 되어 가라앉고

눈길만 먼지 속 멀리

얼룩얼룩

너를 찾곤 할 뿐

어둠 속 귀대

어둠을 사랑하기로 한다

수많은 이별 중

다 키운 자식을

불 없는 산 속에 내려놓고 돌아서는 발길

그대로 캄캄 이다

어둠 속 멀리 사라지는 그림자 하나

아스라이 눈에 담고

나도 사라지다 돌아서

철조망 앞의 어둠을 말아간다

아스팔트도 흐느끼고

가로등도 흐린 귀로

이 길 멀리 가까이

어둠이 모두 그리움이기에

짠한 것일랑 지그시 누르고

어둠을 품기로 한다

이름 모를 산 아래 밤

그 안의 아들들을 묶음 사랑하기로 한다

맥모닝 기억

새벽이

책장같이 쌓인 안개 속

고속도로를 달리며

해 잃은 아침을 여는데

너는 어느 산 아래서 깨어나고 있느냐

지울 수 없는 추억이나 기억이라는

상자 하나쯤 품고 살다

아침을 담은

빵 계란 감자튀김을 사서

맥모닝맛 기억 속에 서있는

고소한 널 만나

새삼 이날의 봉오리는 꽃피는데

잘 살다 가는 건 뭔지

오늘도 아침을 안을 준비는 됐는지

다해주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

미안해도 되는지

새벽 외곽고속도로에는

수많은 물음이 깨어

저속으로 스친다

사랑의 글이 아무리 많아도

다 표현 못한 마음 하나로

어제의 안개는 오늘의 안개 속을 달린다

진급 소식

사람이 귀하니 난 자리가 크고

꽃 폈다 떠난 자리 흔적만 깊다

귀한 아이이니 더 정이 깊고

얼굴 따라 공글러지는 동그라미 그립기만 하다

창문 격자무늬 밖은 밤인데

어느 곳에 이 시간 머물러 있느냐

한 곳을 응시하면 한 곳이 출렁이고

두 곳을 응시하면 두 곳이 출렁이는데

모든 이 땅이 출렁이는 밤에는

자식과 어버이 된 자들의 그리움이

우주의 터널처럼, 빅뱅이었다가, 블랙홀이었다가

더 먼 별자리쯤으로 만날 게다

지금은 찰나도 사랑하고

두고 온자도 사랑하고

함께 있는 이도 사랑하고

그득하거나 그윽한 모두가 사랑스러울 텐데

이는 군복이 주는 무늬인가

원래 밤의 무늬이던가

세상의 계단은 오르거나 내려가려 있고

엘리베이터도 오르내리려 있을 테지만

사람 맘의 오르내림은 무시로

우주였다가 허공이었다가

타임머신처럼 당겨 순간을 이루는구나

잘 지내야 한다

안타까운 시간을 홀로 아닌 같이 나누나니

이왕이면 그윽하고 덕성스럽고 아름다워야 한다

시간을 유지하거나 공유하는데도

돈이 들고 사랑이 들고 그리움이 든단다

2015.5.6. 아비가

이제 내게 다오

괜찮다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말도 걸음도 눈물도 다 그립다고 말함을

왜 눈 감았을까

그래도 아프던 날들

누구도 대신 못할

나만의 사랑

이젠 모든 짐 내게 주고

가벼이 마주보자고

넙죽넙죽 사랑을 들이키고

꽃 되어 펴보자고

벚꽃 뭉텅뭉텅 가지마다 달린

꽃그늘에서 또 기약을 맺어본다

모든 것 내게 주고

가벼워지라고

꽃비 맞으며

너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