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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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아닌 것

남이 아닌 것이 많다

외곽순환도로

나오면 산성 가는 길

그 언덕길이

이젠 남일 수 없다

너를 묻히고 있는 모든 거

너를 보듯 소중해져버린 모든 것이

서글픔을 담고 있었던 줄이야

너와 커피를 마시던

음식점 바깥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이

너와 나를 겹쳐 정지 시켰고

언덕 위 정류장 가를 지나는 이

외다리로 걷는다

교문 앞 플랜카드 구호는 입 열린채 멈췄고

학생들은 들고 나도

네 모습은 없겠거니

못 본 척 지난다

그래도 남은 아닌 걸

이런 말

-부모 감사의 글 백 줄을 받고

애가 군에서 보내온

부모 감사의 글 백 줄

이런 말 해보려

어린 마음 비워있었나

빗길 멀리

안개 멀리

이름 모를 산 아래서

한 사내아이가 말해주는 부모

이 말 할 줄 알게 되기까지

밤이면 별을 얼마나 많이 봤을까

캄캄했을 텐데

마음의 뒤안길을 돌고 돌다

달무리처럼 부푸는 집 향한 그리움

무엇으로 눌렀을꼬

이 빗길 윈도브러시가 훔치는 것은

누구의 눈물일까

거북껍질 가슴을 뚫고

통증처럼 솟는 뜨거운 용수

이런 새끼를 두고

실패할 부모는 없으리라

이 혈서를 읽고

그 희망

어느 부모가 쥐어주지 않을까

아들의

백팔배를 받는다

즐거운 벌

사람 그리워하는 일이 벌이다

볼 수 없기에

날로 생각남이 고문이다

가을잎 깨금발로 거리를

가다 멈추고 가다 돌아보고

그리움 때문이다

구름 흐르다 갈라서

다시 떠나다 비되기도

보고픔 때문이다

하루를 훨훨 돌다

다람쥐처럼 집을 향할 때

산이 일어서고

물길이 파여 있어도

끝내 귀처 하는 것은

무엇을 아직 쥐고 있는 걸까

아비로서

오늘도 돌아와 촛불을 켜고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고

또 그리움으로 들어서는 버릇은

즐거운 벌이다

가온펜션

북한강 물안개를 헤치고 보면

강 옆에 강 닮은 하얀 펜션

아들 군대 첫외박에 설레어

하룻밤 강처럼 이야기 나눴던 곳

저문 강가에 숯불을 올리고

단 술을 건네며

무탈한 군 생활과

무용담을 듣다보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얼굴만

한없이 보이더니

지금 잘 있는지 몰라

세상에 흐르는 게 강물뿐이던가

나이도 흐르고 젊음도 흐르고

다만 출렁임만 있었을 뿐인데

산다 한다지

그렇게 이어오다

강물 문득 멈췄던 곳

북한강변 가을 냄새 품은 펜션

생각에 잠긴 데이지빛 자그마한 방

지금 잘 있는지 몰라

우체국을 나오며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가슴 한 조각을 보내는 거다

물안개빛 그리움을 펴

저녁 강가에 올리듯

마음을 먼 여행 보내는 거다

알아봐주는 이와

읽어 줄 이를 위해

하이얀 종이 위에 글씨가 되어

다소곳이

펼쳐질 시간을 기다리는 거다

어떤 기다림과 만날 수 있을까

기다림과 기다림이 만나

이름 모를 한 송이

꽃을 피우는 순간을 위해

떠남과 도착 사이

한없이 설레어 보는 홀로의

기도가 길을 따라 동행해 가더라

가평강

가평을 갔다가

부대 옆을 지난다

크게 떨어졌을 때만

그리움이 돋는 줄 알았더니

가깝다는 것이 더

아프다

못 본다는 건

짙은 색깔이다

하늘 끝 시린 토요일

푸르른 더위 건너

단풍은 산을 마구 내려딛고 있는데

붉어진 것이 나뭇잎뿐이랴

바깥은 가깝지만 멀다

담 하나 차인데

담 하나 차인데 병영 안은

먼 섬

세월이 오래

너와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으로

흐르고 있다

광릉숲 황토 숯불 가마

여름에 너와 왔었지

물소리는 여전하건만

계절은 한기가 오가니

그 시간 어디쯤 갔으랴

지금 넌 군인 난 계곡의 초로

아빠라는 것 아들이라는 것

삶의 키 커 의젓한 통화 말씨

별 없는 밤하늘

혜성처럼 다녀가는 네 생각

꼬리가 길어 눈물 닮았는데

그치잖는 전생과 이생

계곡의 밤물소리

연연한 인연 중 혈연만 할까

나이 들면 키도 줄어든다더니

왜 대책 없이 그리운 건지

말 벗어낸 잎새 붉어져

한 잎 한 잎 물길 따라 간다

밤이어도 푸르다

너 굳세게 있으니

나 굳건히 있으니

온통 파아란 밤하늘이다

집 겸상에서 맛 본

고등어 등허리 빛이다

자대배치

집을 못 정하고 기다리는 일은

나그네 된 마음일까

어디 어느 집에

어떤 이들이 기다리는지

파고드는 생각의 시간은

선 앞둔 색씨맘일까

언젠가 쇼윈도에서 스쳤던

목각인형을 새기는 일일까

아니면 두려움의 연장일까

스산하다 오싹해지는 날씨

세상의 편지마다

날씨 안부가 새겨진 것은

추위가 사람을 얼리기 때문이리

나눔보다 챙김이 켜지는

계절이 됨이리

더블 백을 지고

이 계절을 건너

새 집을 찾아 가는 길

사람에 의해 따스해지기를

발 담글 소속을 받고

손님이다가 주인이 돼가는 동안

몸에 잘 맞아지는 옷처럼

편한 집이 되었으면

새집살이

집이 집일 수 있는 건

흙 돌 나무가 아니라

사람 때문이지

집은 손님을 닮지 않고

주인을 닮는다지

그 맘이면 내 집이 되네

시계 초침도 주인처럼 가고

벽 하나도 거울이 되고

불 없이도 따뜻할 수 있네

병영은 집

지켜야 할 내 집

겨울 같은 매서움도

여름 같은 혹독함도

사람처럼

지켜주고 비켜주네

자대면회

아들의 군 면회 예약

차 먹거리 잠자리

예약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예약하고

잠자리에 눕는다

그저께 밤엔

갓 태어난 아기 콧구멍을 보았다

닮았다

어제 밤엔

골목 가로등 밑을 떠나가는

교복의 학생 등을 보았다

불빛이 어깨에 앉아 있었다

오늘 밤엔 베레모 쓴

그을린 얼굴을 보았다

그을리는 시간이 삶인 걸 아는 듯

강물 표정이었다

만남에 예약이 없었듯

헤어짐에도 차표는 없는 것

겨울이 온도를 낮추고 더 내릴 것이다

그때 우리 콧구멍을 맞추자

코 평수를 넓혀

유전자로 만나보자

만남의 갈애가

너와 나로 닿는

어쩔 수 없는 부자

현리에서 만나다

안개가 막는 현리에서

언덕을 얘기하는데

산을 듣는 새끼를 만납니다

안개가 길을 막는 현리에서

강을 얘기하는데

바다를 듣는 자식을 만납니다

오늘은 별이 없지만

밤마다 눈 밝히는 은하수가 사는 동네

현리에서

넓어지고 커진 가슴 하나 만나고

안개 너머 별들의 마을에 입성합니다

별은 빛이라지요

스스로 밝다지요

그래서 내일은 환할 겁니다

늙어가는 인생길에도 그대들에게

오늘 피어난 현리의 선인장 한 그루

홀로 사막이라서

물 한모금의 가치를 깨달은

이슬 한 방울의 투명한 은혜를 깨우친

지상의 별똥별을 전합니다

현리 안개

현리에 안개가 짙은 이유는

젊은 가슴들이 무너져

다시 피어오르기 때문일까요

군부대가 많은 동네에

이토록 잦은 안개가

필요한 까닭은

안개만이 이유를 감고 있겠지만

하루하루를 깨쳐나가는

이 나라 아들들의 습기가

이곳에 고여지기 때문일까요

토요일 현리의 모텔에서

하룻밤을 자보세요

방마다 숨없는 고요 속에 피어나는

강줄기를 만나려니

아픈 강

이름 없는 강

지도에도 없는 강 하나

진하게 흐르고 있을 테니

별을 따 가슴 바구니에 담고 담아도

별이 넘치는 가평의 산 복판에

안개가 진하게 산다니

외진 시골 몇 개의 삼거리에서

술 없이 취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