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나의 행복

                   구준회 시집

아들이 군대를 간 2년여 동안 매주 편지를 부치며 행복했다.

그리운 세상에 그리운 시간에 그리울 수 있는 아들이 있어

미뤘던 아빠일 수 있었다.

존재란 아들과 아비 사이라도 섬이다. 어차피 제 빛깔의 삶과

운명과 시간과 노력을 살아야 한다. 끈적한 염려나 기대 없이,

다만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개념에서 담백하게 악수처럼

편지를 부쳤다.

이 시대를 사는 아비 된 자로 해줄 것 없어 다만 “이 세상 어딘

가에는 너를 바라보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형식

을 빌어 보여줄 뿐이었다.

어느 아비이고 최후에 쓰다듬어지는 아빠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생 넘어가기도, 아빠하기도 종합예술이다.

아들의 군대시간이 미뤘던 마음을 표현할 좋은 기회여서

행복했다.

                                                                    2016. 5. 4. 구준회

권두시

작은 나에게

작은 나야

너는 나이다

그래서 너를 보면 기쁘고 아프다

너를 보면 반갑고 측은하다

나는 나에게 미안하다

너인 나야

세상에 고아인 날부터

또 고아를 마칠 때까지

외로워서 인생 이란다

그래서 외로운 이끼리 살라고

바다도 친구도 이웃도 있단다

만나는 모든 것과 이에게 감사하며

늘 말, 물질, 행동으로 표현해 주거라

갈 길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너의 길은 나보다 기쁘고

고맙고 감사한 것이었으면 좋겠구나

너를 멈추게 하거나 울리는 것은

모두 너였고 너이고 너일 것이다

아무도 너를 책임질 수 없단다

네가 너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반복해

스스로 자존 하거라

생각이 아니라 행함이 자존이다

세상의 어느 것과도 어느 사람과도 어느 삶과도

비교하지 말고 오직 유일한 너인 너로

어떤 길이든 가거라

신은 무한의 능력을 너에게 주었는데

쓰지 않는 것은 너의 마음이 한 짓 이란다

너를 의심하지마라

수없이 의심하며 뒤돌아보는 여우가 되지 말고

믿고 광야를 걷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평생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 남에게

빌어먹거나 신세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

너 스스로 존재하라

외롭지 않으려거든

세상의 신발에 네발을 맞추어라

긍정적이어야 될 게다

반발하기를 미루고 배우고 안 뒤 고쳐라

지금 것이 인류가 만들어온

고르게 인간행복을 고려한 최선의 제도다

세상을 신었는지 안 신었는지 모를 만큼

편안해질 때까지 받아들여라

세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정산해 돌려준다

그리고 너를 너로 생각하지 말거라

관찰자가 되거라

너를 떠나 너를 보며 네가 어떤 마음을 쓰는지 바라보거라

계속 관찰하며 바라보고 살거라

그냥 바라보기만 하거라

이 모든 걸 알 때부터 무엇이든 시작해도

어느 것도 늦은 것은 없단다

초가에서 기다리다

너의 삶은 네 뒤에서

눈밭에 길이 되어 찍혀지고 있었다

발자국의 음지마다

어둠을 털어주며

산길을 잘 넘기 바라는 이

가슴으로 촛불을 들고

티끌 같은 에고의 몸뚱이에서 나와

너의 우주를 깨닫고

참 너를 만나서

너인 너를 빚기를 바라는 이 있으니

너의 곁에 영혼이 침묵하며

부추겨 온 여로에

보이지 않는 지친 발자국 하나

부모라는 이름의 그림자 하나

세상의 바람 부는 황야를 헤쳐 나온

점점이 눈물이 된 그림자 하나

아직도 눈밭 멀리

불 끄지 않은 초가에

이 눈이 그치기를

이 폭풍설을 헤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 있으니

목차 60

권두시

작은 나에게

초가에서 기다리다

추천의 글

1.시 편지 54

입영일

긴 주소

지나간다

무궁화 입대

네가 남긴 것

너 가고

군사우편

맺힌 말

남 아닌 것

이런 말

즐거운 벌

가온펜션

우체국을 나오며

가평강

광릉숲 황토 숯불 가마

자대배치

새집살이

자대면회

현리에서 만나다

현리안개

첫 외박 귀대 후

한 해 끝 대화

오빠 면회

크리스마스의 추억

귀대시키고

새벽점호

스키장의 추억

군용트럭

어둠 속 귀대

맥모닝 기억

진급 소식

이제 내게 다오

면회날 밤

일어나렴

우체국 가는 날

아들 짐

남기고 떠남

주문진의 밤

자식 목소리

고래 고기

편지 보낸 날

슈퍼문

군번줄

면회실에서 기다린다

기쁜 말

늦가을 외박

밤비

설거지

햄버거 집

맥모닝

목란반점

나비라면

병장의 하늘

제대예감

2 산문편지

추석달

아빠가 네 나이라면

아들이 고맙고 감사한 일들

생일 축하해

추천의 글

아버지의 응원과 사랑

                                                     국방부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시인 허경운

  여자의 몸을 빌어 태어났고 여자선생님들 손에 초 중 고 교육을 받았으며, 대학에서도 여자교수의 지도를 받았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남자답게 행동해야하는 군부대 입성에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심지어 사나이답게 목청 돋우어 군가까지 부른다.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아아아~”

그러나 과연 부모형제 중 아들이나 동생을 군에 보내고 단잠을 이룰 가족이 얼마나 될까.

입대한 아들에 대한 과다한 관심으로 아들 부대 주변에 펜션을 얻어 사는 부모가 있는가하면 아들 부대로 매일 출근하는 부모, 아들이 전화를 하면 즉시 달려와 부대 간부들을 당황시키는 헬리콥터 부모까지 요즘은 군 부모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또한,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군 생활을 이기지못하고 부적응 제대를 택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으며, 입대 전에는 정신과를 가 본 적 없고 심리상담을 받은 적 없던 사람들이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티는 일도 다반사.

군대란 그런 곳이다. 그러나 가정을 다시 이해하고 자신을 넉넉히 보듬고 가꾸고 드디어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 멋진 사나이로 만들어주는 힘들지만 좋은 곳이다.

이 즈음에, 목청높여 큰소리로 소개하고 싶은 아름다운 아버지가 여기 있다.

아들이 앉았던 옆 의자에 앉아 운전을 하면서 아들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휴가 때 아들이 미쳐 챙기지 못하고 떨구고 간 군번줄을 가져다주며 아들의 흔적과 아들이 지키는 나라를 생각하는 아버지가 있다. 나라를 지키는 병영의 아들에게 끊임없는 응원과 사랑을 보내며 한자 한자 시를 써 내려간 아버지의 마음.

그냥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들은 아버지의 응원과 사랑 덕분에 힘들고 아픈 징집병의 임무를 잘 마칠 수 있었으리라 아버지가 보내주는 글을 먹고 아들은 하루하루 멋진 사나이로 성장 했을 것이다. 구구절절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이 책이 우리 군에 널리널리 알려져 읽혀지길 바란다

그리고 술잔의 절반을 눈물과 기도로 채워 마시는 아버지 구시인께 눈물어린 박수를 보내고싶다. 부디 건강하시고 내내 건필하시기를

시 편지

입영일

서랍을 열어보고

방 안을 둘러보고

두고가는자 되어 떠나 보는 집

시간이 조여 오는

미련을 몇 잎 품고

차를 탄다

연병장을 딛어나오는

군악대 북소리에

드디어 하나를 떠나고

하나에 들어선다

눈물 찍는 어매

못 본다는 것이

바짝 몸 잡아끌어

묻혀가는 손 하나보며

흔드는 손

아이는 연병장 끝 사라지고

움직일 수 없는 발길이

오래 찍고 있는 건

이별이다

드디어 떨어져

많은 밤을 새는 거다

나를 위하는 걸 미루고

더 큰 것을 위해보는 것

남자가 돼보는 거다

긴 주소

ㅡ 훈련소 소포를 받고

주소가 참 길구나.

그만큼 복잡하고 켜켜이 쌓인 공룡조직에 있음이리라

이것이 너의 현 번지로구나

아빠 엄마의 아이에서

나라 소속의 군인이 되었구나

그러나 어디에 있던 너의 주소는 두 글자

아 들

귀한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드리라

그 흔하던 것의 가치가

모든 건 시간이었다는 것

시간이 그랬고

모든 건 말 때문이었다는 것

순한 말 비수 말

부푸는 작은 의미

엄마

그리고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

나와의 싸움이다

하기 싫어하는 나와

미루고 피하고 싶어 하는 나와

그래도 됐던 나와

그러면 안 돼는 군인인 나

나를 새롭게 세워보는 시간

남자이기에 얻는 기회

강해진다고 한다

장애를 뚫을 수 있게

강해지라고 달리고 또 달리는 곳

결국 적군보다 강해야

살 수 있게 만드는 거다

이것에 다른 말 있을까

군대 가서 편하게 있다 나왔다는 건

견디다가 왔다는 거겠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최고로 강해지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모든 것이 강자를 만들 최적의 도장에서

가장 강해져야 한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장 강하게 만들어 보는 곳

이곳은 군대

자랑스러운 곳이다

이곳은 극기 이제까지의

나를 극복해보는 곳이요

나를 초월해보는 곳이다

도전하고 해내고 이기는 곳이다

혹시 살다가 초라하고

안돼 보인 순간이 있더냐

이곳에서 다 벗어내는 거다

뛰어넘는 거다

멋지지 않은가

강해지는 길은 힘들다

땀과 눈물을 요구한다

강철 근육을 키우고

비호의 행동을 키우고

맹호의 의지를 세워야 한다

부모들은 그 과정에 잔 눈물을 흘리지만

귀하디귀한 기회이다

이 과정을 잘 이긴 새끼에게

부모는 큰 눈물을 보내는 거다

하루하루 내가 더 강해졌는지

기뻐해라

생사 앞에서 모든 건 잊고

군인으로서 강자로서 갖는

최강의 하루들을 만드는 거다

군대를 사랑해라

나의 현주소는 군인이다

지나간다

모든 건 지나간다

시간과 함께

아픔도 지나간다

눈물도 지나간다

그곳을 지나기에

안도와 기쁨도 있다

그것이 있기에

사는 맛 쏠쏠하다

사내 일생엔 앞만 있으면 된다

눈물도 뒤로 흐르지 않는다

아픔도 뒷걸음치지 않는다

뒤로 갔다 오기엔 짧기만 하다

지나간 것은 끝난 것이다

언젠가 마침표가 있다

마침표 뒤에서 징징거리는 것은

사내의 할 일이 아니다

어떤 것이든 결국은 지나간다

영원히 멈춰있는 건 없다

고맙게 맞이하고

잘 보내주는 것이 인생이다

지나가는 것 위에 있어 행복이다

무궁화 입대

아들이 무궁화가 되었다

훈련소 입영날

뒤돌아보며

무궁화처럼 웃었다

무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궁화가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견딜 것이다 이겨낼 것이다

어떤 병충해도 풍화도

무릎이 까지는 무궁화

팔꿈치가 터지는 무궁화

여린 잎에 타오르는 땀과 피멍도

눈물 하나면 씻을 수 있다

고함 한번이면 떨칠 수 있다

그 가슴에 피어나는 꽃잎 물고

씨익 웃으며 달릴 것이다

조국을 덮을 하얀 무궁화 꽃잎 되어

국토의 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한 송이 선 분홍빛 군인이 되어

이 젊은 나이의 한 때

무궁화로 살 것이다

네가 남긴 것

네가 앉았던

등받이와 방석 옆에 앉아 운전을 한다

전철역사거리를 지나며

도처에 네가 있음을 본다

반항아였지만 조금만 가리고 보면

귀엽고 아름다운 아이다

운전석과 옆자리를 채우고

먼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했지

추억 만들기, 함께하는 시간 만들기

그랬었다

무엇이 만들어지기는 했을까

도리어 네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이 많아

애틋한 영상이 많이 떠오르곤 한다

길게 갈 것이다

김밥 집을 오랜만에 들어서며

몇 줄을 달래야 할지 몇 초 생각했다

네 것 두 줄을 빼고 시킨다 지금은

김밥을 나눠 먹을 수 없는 곳에

너는 있다

너 가고

공항대교를 달릴 때

국도변 휴게소를 지날 때

어느 시내를 빠져나올 때

바다 바람과 메로나 맛과

김밥천국

도처에서 묻어나는

네 모습과 만나며

과거나 추억이란 게

때론 소중한 것을

많이 좀 쌓둘 걸

하늘은 가을을 데려오고

초록 가로수는 생각에 잠겨있고

생계의 기다림은 이어지지만

뭔가 부족한 일상

너 가고

종이 구겨지는 소리

흙에 긁히는 소리

눈 감고 땀을 세는 소리

견디리 10장10절 말씀소리

젊음 건너가기가

도의 길인 걸

분명한 건

신은 시계가 하나 밖에 없어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는 것

숨 쉴 바에는 확실한 들숨 날숨으로

해 볼 바에는 앞장서

시간을 부숴나가는 거

그래야 스스로 존재했다 할 수 있겠지

아들아

군사우편

장흥국도변 빨간 우체국

차를 세우고 신호등을 건널 때

갈 사연보다

발걸음이 두근거려

뉘 기다리 듯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그 총각

ㅡ 군에는 검열 때문에 빠른 등기로 할 필요 없는데요ㅡ

ㅡ빠른 등기로 해주세요ㅡ

종이와 글자가

무엇을 전달할까

얼마나 전해줄까

그래도 괜찮다

쬐끔이라도 전해만 진다면

산을 옮기리

편지는 밑으로 던져지고

영수증을 받고 신호등을 건널 때

어찔한 하늘

어딘가를 거쳐 거쳐

편지는 주소를 디뎌 갈 것이다

사람처럼

너에게

우체국에 오면

봄 냄새가 난다더니

가을 냄새도 섞였다

그리운 이들이 다녀간 냄새

맺힌 말

그 말이 맺혔다

목젖에

속가슴에

하르핀처럼 긴 침만 있는 못

깊이깊이 스미는 못

ㅡ가끔 사진 보내줘 하나뿐인 조카 군 생활 궁금하니까ㅡ

잔잔히 강물 되어 노을에 흐르는

고모의 어깨너머 사랑

무궁화 꽃이 왜 피는지도 모르면서

철모 눌러쓰고 총 잡은 조카 모습

보고 싶다며 한 말

아버지의 손자도 제 자식 같아

오빠 생각하듯

무엇이 안쓰러웠는지

보내달라니

시집살이 수십 년이어도

제집피붙이 그리기 천성이라

놓지 못하고 주는 눈길

습기 짙어

그 말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