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행복한 사람

이게 어디여

안경은 써야하지만

꽃 오고 구름 흐르는 세상

먼 길 돌아 온 편지까지

올 컬러로 보이는 두 눈이 있으니

고마워요 감사해요

우러난 말 시원히 건네줄

입이 있으니

엄마 손맛, 바다 속 짭조름한 진미

깊게 씹고 맛보고 음미할

이빨과 혀가 있다니

딸애의 간지러운 속삭임

아내의 잔 마음 풀어내는 잔소리

마음 눕혀줄 푸르른 음악

목탁 소리 처마 비에서 찾아주는

귀가 양쪽에 있으니

허위허위 인생 닿는 대로 가는 두 다리와

달빛마저 안아 쓰다듬어줄 팔과 손

글을 쓰게 해주는 열 손가락

우주 중 오직 내게 인연된 것

양친께 받은 후 큰 고장 없이

이 나이토록 함께 사니

세상 모든 것엔 값이 있다는데

큰 부자

이 몸에 천국이 들었네

핸드폰 배달

핸드폰을 배달하며

꽃 한 송이 가져다주네

노래 한 송이 가져다주네

노래처럼 꽃같은 하루 되라고

기도도 넣어주네

사랑 한 통 배달하네

편지 한 통 가져다주네

사랑하고 사랑만 하여

행복 샘을 나누라고

분홍 마음 넣어주네

핸드폰을 배달하며

초록 귀, 입 하나 가져다주네

호수처럼 순한 귀

샘물처럼 맑은 입 되라고

안경닦이로 닦아 전하네

나비되어 전해주네

동요 작사가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노래의 가사를 짓는다는 말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이 말이 음을 달고 하늘을 나는 세상이

선율들이 가사 옆을 빙빙 돌며

호기심에 기다리고 있다

한 아이의 작은 입으로

한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로

이 곡의 마음 숲을 날아가서

이 곡의 마음 물길을 타고 흘러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기를

큰 무대도 좋지만 풀길 혼자 걸을 때

창가에서 바다를 보거나

숲을 뛰며 팔랑일 때에

이 말이 품은 것들과 사귀어

외롭지 않기를

동요가사를 지으며 동심에

꽃을 넣고 하늘을 넣고 꿈을 넣어

날마다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주는

행복한 사람

노래 만나는 길

시의 바람所望에 음을 데려와

기도의 저음 손 내미는 고음

청춘의 들끓음엔 빠른 변화음 띄워

침묵하던 시의 색에 목소리 입히면

다사랑 달뜨는 노래의 세상

누운 가사가 팔랑팔랑 일어나 뛰노는 봄

방울방울 흐르는 시냇물 율동

녹색 바람, 동그란 바람

살랑살랑 삶을 뒤적여 쓰다듬어주는

노래의 손길

노랫말을 매만지며

꺼져가는 이야기에 날개를 띄우고

끊어져가던 인연의 종소리를 달며

음의 나라를 꿈꿈은

모두와 지음의 행복을

엿듣는 작업이라서

새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꽃보다 고운 소녀 되라고

지상 가장 고운 나비 되라고

다듬고 닦아주며 빛을 입혀서

노래 만나는 오솔길에 풀어줍니다

까치밥

전화를 했더니,

-아파트 단지 내 감나무의 감은

주민 모두 감상할 수 있도록

문화인답게 따지 말아주세요-

팻말에 살아남은 감들은

겨울을 볼 수 있었다

눈 덮인 아파트 단지에

까치, 동고비, 찌르레기

단지 내 하늘 주민들이

감나무를 찾아와

이 가지 저 가지 뛰어 다니며

감 맛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쉼터가 됐다

감나무는 가지 끝을 흔들어

겨울새를 불러

빠알갛게 익은 가슴을 내주고

겨울새의 깃털 몇 온기를 달고

동안거에 들어선다

하얀 클로버

벚꽃나무 환해

꽃잎이 머금은 하늘도 환해

봄 왔어 봄이 왔어

호들갑 봄바람

꽃잎 물고 봄맞이

따뜻할 거야 따뜻해졌어

해의 손길 해의 입술

꼬마전구

빛 모아 열렸네

하얀 클로버

벚꽃나무에 초롱초롱 올라 있네

홍매화 피던 날

오래된 아파트 입구 땅 위에 삐쭉

부지깽이 시커먼 등걸가지

겨우내 눈 맞고 바람 맞으며

마른 가지에 혼자 순 내밀더니

오늘 보니 황홀한 홍매화

잎마다 연분홍 샐비어 보석

꽃송이 늘어진 핑크빛 왕관 열어

봄 하늘 밝히는

꽃 중에 귀한 족속이었네

어찌 알았으랴

시커먼 가지 속에

저런 귀족의 피가

저런 색 빛의 씨가

숨어 있던 줄을

미안하고 고마워라

세상 다 꽃 보듯 보리

홍매화 나무일지 모르는데

홍매화 꽃잎일지 모르는데

천사의 나팔꽃

어떤 여인일까 이 이름

천사의 나팔꽃

어젯밤

하늘에서 떨어뜨린 나팔이

지구별 나무로 내려와 핀

천국의 꽃

길게 뽑은 커다란 유성기 꽃봉

나팔소리 클 게다

그러나

무성無聲의 향기만 불어내는

연록빛 감도는 하얀 나팔

흠흠 천국이 퍼지는

무언의 소리가 드넓다

깊은 산 연록 호수물 머금은 여인이

소리 없이 다가와

차분히 사랑한다는 소식 전하니

꽃으로 태어나 천사의 이름을 받았다

말 없어 천사가 된 꽃

지는 걸 몰랐네

꽃생명 하늘가 하늘

꽃 한 송이 무게가 인간과 같고

꽃 한 송이 눈물이

사람만큼 뜨겁다는데

운동장 가 화단

기인 매미소리

핀 바도 진 바도 놓쳤는데

눈짓 남은 자리

땡볕 운동장 가

한 생명이 봄 다녀간 자리

칠 년쯤 아파야 날개를 얻는다는

매미소리 찾아와 맴도는

꽃자리

별 일 아닐 텐데

지금 전 세계에서

나처럼 비 맞는 이

모두의 영혼은 비맞이

그들의 멈춤에

그들의 바라봄에

똑 같이 투명한 빗방울이 스미리

가까이 있다면 미소 지어 줄 텐데

더 가깝다면 악수할 텐데

흐르고 스미고 얽혀

빗길로 같이 가 바다에 닿을 텐데

해류를 타고 또 한 번 섞일 텐데

지금 세계 곳곳에서 비 맞는 마음이

바다 같아 질 텐데

그들의 멈춤

그들의 바라봄이

바다에 오면 별 일 아닐 텐데

문제없다

문제없다

꽃 피는데 사랑하는데

세상은 문제없다

꽃샘바람쯤이야

눈물도 아니다

젖어보지 않고 웃는

꽃잎이 어디 있더냐

해마다 봄이 너를 위해

봄비가 너를 위해

겨울 뒤에 서있다 오는 것은

맘껏 피어보라고 기다렸던 것

세상은 문제없다

눈 밝혀 보면

하늘의 별꽃도 내려와 피고

새벽 놀도 내려와 꽃잎이 된다

귀 밝혀 들으면

산 깊은 샘물소리도 피어있고

폭설 같은 햇살이 부서지는 소리

꽃가지도 따라 듣고 있다

꽃 피는데 사랑하는데

세상은 아무 문제없다

암 껏도 아니다

눈물이 나고 죽고 싶으냐

죽어봐라

죽어봐서 알겠느냐

거 암 껏도 아니다

세상사는 거 암 껏도 아니다

그렇게 좋으냐

그래봐야 암 껏도 아니다

장마 지면 비 맞고

해 뜨고 밭 갈면 먹는다

배 안 고프면 돌아다니고

심심하면 시 써라

별 거 아니다 암 껏도 아니다

보고프면 전화하고

싫다면 뒷산 가라

물리면 티브이 보고

책 읽다 자라

뭐가 어렵냐

마음의 혁대 풀면

뭐든지 소화는 위장이 알아서 하는 걸

울 일 없다 다 알아야 되냐

모르면 더 편한 게 세상 아니더냐

그냥 가자 끝날 때도 오겠지

희망 하나는 남았잖니

남으로 가겠소

남으로 가겠소

울긋불긋 이 살림 버리고

상표 없는 속옷에 몸 넣고

완행버스 끝 좌석에 묻혀

깃털처럼 떠나야겠소

목 좋은 바닷가가 아니면 어떻소

자갈돌밭 언덕 위

팔베개 베고 풀잎 물 수 있는 곳

찰랑이는 파도와 함께라면

돌무지처럼 머물고 싶소

수평선만 있다면

그 너머 식이, 순이 가끔

해 뜨는 붉은 얼굴

고향 찾듯 온다면

모래처럼 하얗게 늙겠소

아무 이름 없는 바람 몇 줌

생김 없는 순백의 구름 몇 줌

드넓은 가슴 따라

그 연못에 물고기 비늘 지듯 노니는 곳

아무래도

남으로 가야겠소

양재천을 걸어보세요

물오리 물고기 희롱하고

너구리 꼬리 감추며 숨는

강남의 시냇물 양재천에 와보세요

안길엔 물길 따라 자전거 흐르고

둑길엔 고층빌딩 막는 숲길이 뻗고

갈대와 우거진 풀로

사색이 흐르는 중턱 길로

밤의 양재천을 걸어보세요

옷깃을 스치는 인연복이 넘쳐

외등을 따라 달빛 속을 걷는 사람들

물 냄새, 풀냄새, 사람 냄새가 살아있는

양재천을 걸으며

잊을 수 없는 음악도 좋고

삶에 대한 잔잔한 얘기도 듣노라면

물살에 흔들리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죠

가끔 벤치에 앉아

건너편 오가는 인연들을 보노라면

달빛을 흐르는 나그네와

꿈속인 듯 함께한 이생이 고마워지는

양재천의 밤길을 걸어보세요

지구에서 살기

지구를 타고 하루의 귀가를 벽에 걸 때

우주는 죽음 쪽으로 몸을 뒤척였다

신발을 키워 타며 찍어 온 자국은 은하계로 멀어지고

밤과 낮의 모가지를 낡은 지구가 돌려도

순간순간 긁히는 굉음을 듣지 못했다

첨탑 위 흡연구역을 빤히 내려보는 검은 별

인간을 찾아 더듬는 외계인도

저 어둠의 갱도에서 언젠간 끝날 질주를 할 뿐

돌아가야 할 정자의 고향을 몰라

아무도 길을 말해주지 않는다

지구의 가속도를 초속 7킬로로 탈출 할 수 없어

우리는 삶이랄 것도 없는 매달린 행복을

폭음탄에 꽂아 여름 백사장에서 쏘아 올렸다

별을 당기는 시신경의 찰나

시신경을 부풀리는 별의 포음

소원이 켜지고 빛이 켜지고

지구에 꽃나무의 생식기가 피고 지고

꽃향기가 날리고 떠가고 45억 년

누군가에겐 별이 꽃이 될 때까지 쏜다

지구에 매달려 하루의 신을 벗으며

오늘에 고마워

밤하늘에 그리움 하나쯤 있어야 하겠다

무릎을 내밀고 손끝을 맞대

우주 위에 간절한 원 하나쯤 가지고 살아야 하겠다